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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oxy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4-03-15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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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노바나나몰 Ad Hoc폴아웃: 이퀘스트리아by Kkat​연령대: M (성인)​​​장르: 모험, 크로스오버, 고어, 다크​​​2013-08-1730장: 사냥꾼과 사냥감​“뭘 그렇게 보고 있어?”​“극심한 분노의 움직임. 느리고 육중하면서 강렬한 움직임과 불규직적이고 부들대면서 극도로 흥분한 움직임을. 둘 모두 누군가를 죽이려는 움직임이야.”​덕목.​스테이블을 나와 처음으로 들었던 제대로 된 조언은 내 덕목을 찾으라는 거였다. 아니, 정확히는 무기와 갑옷, 동료를 찾으라는 거였다. 힘든 일이었지만, 난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덕목을 찾으라는 조언은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퀘스트리아 황무지가 내게 선사하는 극심한 공포를 나 자신을 잃지 않고서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것. 난 그 조언만큼은 교묘히 피하고 있었다. 그 대신에 다른 목표와 임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망가진 세상에 갇혀버린 포니들을 위해서 세상을 좀 더 밝고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그간의 모든 노력이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레드 아이는 너무나도 똑똑하고, 교활한데다 조직적이었다. 난 매번 놈을 과소평가하기만 했고, 놈은 나를 상대할 때 그 점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신이 되겠다는 정신 나간 생각마저도 놈의 치밀하고 소름 끼치는 계획을 보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단순한 살인 행위가 아니라, 철저한 계산 하에 행해지는 유니콘 도살이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거기에 레드 아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후대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수백만에게 평화를 안겨줄 수 있는데 오늘날 고작 수십에서 백에 달하는 유니콘의 죽음이 무슨 문제인가?​씁쓸했다.​여신이란 작자는… 미쳤다. 그러면서도 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너무도 강력해서였다. 놈의 수하는 레드 아이보다 수는 적을지라도, 이 황무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다. 비록 여신이 알리콘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알리콘들은 여신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여신의 목표는 우리 종족의 멸종을 전제했다.​그리고 여신은 매우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내가 계획을 세운다 해도, 놈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파훼해버릴 것이다.​우리는 신들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고 있었다.​어둠이 덮쳐오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덕목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이었다.​하지만 덕목도 내게 등을 돌릴 수는 있다. 덕목도 타락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와쳐는 내게 포니들의 6대 덕목에 대해 말해줬었다. 친절과 웃음, 관용, 정직, 의리, 마법이었다. 물론 다른 덕목도 많이 있고, 나만의 덕목은 저 6대 덕목에 없을 수도 있다고 분명히 말해주기도 했다. 난 와쳐에게 내가 보았던, 뒤틀린 덕목을 가진 포니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난 웃으면서 나는 진정한 덕목을 가진 포니들보다 그런 포니들을 찾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농담 삼아 생각하곤 했다.​이제 난 트릭시라는 여신을 만났다. 그녀는 마법이란 미덕이 타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타락한 친절만 찾으면 다 채우는 셈이다.​{{아, 넌 이미 타락한 친절을 만나지 않았느냐, 리틀핍?}}​여신의 잔혹하면서도 달콤한 목소리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수많은 속삭임이 뒤따라 여신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말은 너무도 무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바로 너잖느냐.}}​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난 그것보다는 더 나은 포니다. 더 나아야만 한다.​하지만 내가 여신의 가혹한 말 한마디를 강하게 부정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그녀가 맞았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의심과 악마를 떠올렸다.​난 올드 애플루사에서 노예들을 구출했지만, 정작 노예상과 거래하는 마을에 그들을 내버리다시피 했다. 메인해튼에서 파란색 포니를 강간하고 사냥하는 레이더들을 죽였지만, 눈앞의 문제만 해결한 후엔 그녀를 운명에 맡겼다. 일이 터졌다 하면 제멋대로 개입해서는 돕는 시늉을 하다 그냥 떠나버리는 짓을 얼마나 더 많이 하게 될까? 필리델피아는 내 친절의 피해자인 걸까? 거울이 떠올랐다. 내 영혼을 비춘 그 거울이. 그 거울에서 본 것은 타락한 친절이었을까? 괴물이었을까?​안돼... 이건 쓸모없고 머리를 아프게 할 뿐인 생각이다. 여신이 내 약점을 파고들어 괴롭힌 것뿐이다. 내겐 덕목이 있다. 내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선하고 진실된 덕목이.​있어야만 한다.​*** *** ***​우리는 마리포니의 가장 온전한 건물에서 나와 강렬한 햇빛으로 들어섰다. 여신의 알리콘 넷이 우리를 스카이 밴딧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핍벅이 딸깍였다. 베일파이어 폭탄은 이곳 지하에서 폭발했다. 스플랜디드 밸리의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은 필리델피아 크레이터에서 느껴지는 공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지상에서는.​근처 벽 쪽을 바라보자 한 쌍의 분수대 위에 건물의 구조도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핍벅이 불길할 정도로 빠르게 딸깍였지만, 난 구조도를 스캔하는 일에 열중했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우리 주변에 알리콘들은 무너진 벽 뒤, 부서진 기둥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가만히 서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적막한 그들의 모습은 섬뜩하고 불길했다.​벨벳 레머디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번성한다면서 여기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는 것 같은데.”​난 고개를 끄덕이곤, 거의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마치 알리콘들이 우리에게 정숙하라고 하기라도 한 듯이. “저 녀석들, 아무 말도 안 하지 않나요?” 스플랜디드 밸리에서 저들을 조우한 이후로 아무도 텔레파시로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전에 만난 다른 놈들은 말이 많았었는데도. “아무래도 여신한테서 가까워질수록 통제력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자아가 여신에게 잠식된 거죠. 이 정도면 사실상 드론에 가깝네요.”​칼라미티가 속삭이며 말했다. “내는 저긋들의 자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짜피 다들 여신은 위대하고 딴 긋들은 벌레 같은 거라 생각하지 않겄나. 조용한 것도 썩 나쁘진 않네.”​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테인트 때문인 것 같데이. 스플랜디드 밸리는 테인트로 쩔어있다 아이가. 검마는 소위 말하는 ‘아이들’이랑 소통할 수 있다 카지만, 여서만 그렇고 레드 아이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통이 불가능한 기제. 근디 여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거 보믄, 스트랜디드 밸리가 놈의 능력을 억수로 증폭시키는 거라 본다.”​그럴듯하군. “그럼, 여신조차 저버린 이곳에서 빠져나기 전에는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칼라미티는 내 말이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렸다.​물론 알리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를 과거 하늘 마차의 착륙지대로 쓰였던 아스팔트 평지로 인도했다. 스카이 밴딧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 지붕에서 파이레라이트가 우리를 보곤 이리저리 움직이며 울었다.​벨벳 레머디는 걸음을 멈췄다.​칼라미티는 파이레라이트를 보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는, 걸음을 멈췄다. “잠깐 멈춰봐라” 그는 앞다리를 내밀어 날 막았다. 네 알리콘은 스카이 밴딧으로 계속 걸어갔다. “점마가 경고하는 것 같데이.”​다른 알리콘 하나가 하늘에서 우리 뒤로 떨어져 내려오며 보호막을 쳤다.​“그런 것 같아.” 벨벳 레머디가 숨을 내쉬었다.​스카이 밴딧으로 걸어가던 네 알리콘 중 가장 앞에 있던 알리콘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놈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마법 에너지 폭발이 발생했다. 알리콘 셋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그중 두 알리콘의 시체는 끈적이는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남은 하나는 사지가 뜯겨나간 채로 피를 흩뿌리고 처량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폭발에 날아갔다. 벨벳 레머디가 뿔을 밝혀 마취 주문으로 알리콘이 몇 초 동안이나마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게 해주었다.​주변에 있던 알리콘들도 일제히 비틀거렸다. 색색의 빛줄기가 허공을 가르자 두 알리콘이 더 쓰러졌다.​벨벳 레머디는 눈을 감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뿔 끝에서 작고 깜박이는 에너지 구체 다섯을 생성해 냈다. 그중 하나가 내 머리 위로 움직였다. 다른 하나는 벨벳의 위에 있었고, 나머지 구체도 칼라미티, 제니스, 파이레라이트에게로 다가가 마치 작은 수호자처럼 머리 위를 맴돌았다.​“새 마법이에요?”​벨벳 레머디는 “나중에 설명해줄게”라고 말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도망칠 길을 찾고 있었다. 폐허에 있는 알리콘들도 보호막을 치기 시작했다.​사방에서 마법 에너지가 빗발 치고 있었다.​헬하운드 한 무리가 알리콘에게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골짜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헬하운드가 엄호사격을 하고 있었다.​놈들이 착륙지점에 지뢰를 매설한 거였다! 난 헬하운드들이 지상에서 몇 센치도 안 남은 곳까지 굴을 파다가, 그 얇은 천장에 원더글루로 지뢰를 붙이고는 파내버린 굴을 다시 메우는 모습을 상상했다.​“뒤로 빠져!” 난 외쳤다. 일단 이 포화 속에서 빠져나가 재정비해야 했다.​몸을 돌리니 우리 뒤에서 보호막을 두르고 있던 알리콘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놈의 뒤로 마리포니로 돌아가는 출입문은 어둡고 공허했다. 출입구로 향하는 콘크리트 계단이 폭발로 인해 무너지는 순간 헬하운드 하나가 우리 뒤에서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알리콘이 그에 맞서려 했으나, 육중한 손톱이 알리콘의 보호막과 옆구리를 찢겨냈다. 알리콘은 주문을 시전하려 했으나 헬하운드가 발톱으로 알리콘의 얼굴을 갈가리 찢어내버렸다.​{{버릇없는 똥개 자식!}}​고음의 호각 소리가 하늘과 내 머리 속을 울렸다. 여신이 마리포니의 공습경보를 작동시키고, 그걸 또 텔레파시로 머리에다 때려 박고 있었다.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각하거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칼라미티와 벨벳 레머디, 제니스도 귀를 막고 있었다. 보아하니 제니스는 귀를 막은 게 소용이 있는 듯했다.​헬하운드가 귀를 막고 고통에 겨워하며 쓰러졌다.​다른 헬하운드 들도 고통스러워하며 뒤도 안 보고 골짜기로 도망갔다. 우리 앞에 있는 한 놈은 그리 빠르지 못해, 알리콘 셋이 보호막을 풀고 놈을 덮쳐, 두꺼운 가죽을 뿔로 단번에 뚫어버렸다.​그중 한 알리콘은 하늘색 에너지 빔에 맞아 녹아내렸다. 헬하운드 스나이퍼가 쏜 거였는데, 여신의 정신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거나 그걸 막을 대비책이 있는 놈인 듯했다. 헬하운드 놈들의 사격 솜씨가 하나같이 형편없는 건 아니었다.​오랜지 색 에너지 빔이 칼라미티의 날개에 적중했다. 잠시 동안 칼라미티의 온몸이 오랜지색으로 밝게 빛나더니 점차 빛덩이가 되어갔다. 그의 머리 주변을 맴돌던 에너지 구체가 펑 터지자, 빛덩이가 되어가던 날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빔을 맞은 곳에는 내 발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남아있었다. 벨벳 레머디의 마법 덕에 칼라미티는 잿더미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쓰러졌다. 비명 소리는 이내 여신의 소음 공격에 묻혀버렸다.​경보가 멈췄다.​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에너지 빔을 무작정 엄청나게 쏴대기보다는 조금씩. 신중히 조준한 뒤에 쏘고 있었다. 에너지 노바나나몰 빔은 알리콘의 보호막 앞에선 무력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소음 공격이 가해지자 헬하운드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 ***​“진작 옛 갑옷을 입을 거 그랬고만.” 칼라미티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벨벳은 울지 않으려 하며, 칼라미티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뿔을 밝혔다. “마. 피는 안 나잖나.” 마법 에너지가 날개의 살점과 깃털을 태우긴 했다.​“조용히 해. 힘도 풀고. 의사가 제대로 좀 보게.” 벨벳의 표정을 보니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우리가 엄폐한 잔해더미에 또다시 에너지 빔이 날아왔다. 알리콘들이 스나이퍼를 처리하러 날아갔지만, 그때마다 헬하운드들은 땅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놈들은 알리콘이 마리포니에서 멀어지고 산개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여신은 놈들의 함정을 알아챘는지, 아니면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는지 알리콘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었다.​“처음에 네 알리콘이 죽었을 때 다른 놈들의 반응을 봤나?” 제니스가 안장가방에서 약병과 약재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 트릭시라는 괴물이 알리콘의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거라면, 한 번에 다수의 알리콘이 죽을 경우 고통스러워하거나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겠군.”​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난다면 실험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난 벨벳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을까요? 다시 날 수 있겠죠?”​벨벳은 애가 탈 정도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내 치료 마법으로 날개의 골격 같은 것은 고칠 수 있겠지만, 상처를 낫게는 못해. 이번 주 내로 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나으려면 아무리 못해도 강력한 회복 물약은 마셔야 할 거야. 문제는 지금 우리에겐 평범한 회복 물약조차 없어.” 벨벳은 슬픈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테이블 2에서 널 치료하느라고 의약품을 다 사용했거든.”​죄책감이 느껴졌다.​칼라미티가 벨벳의 조언은 간단히 씹고 입을 열었다. “굉장한 마법이네. 니가 내 생명을 구했데이.”​벨벳 레머디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표정에는 미소가 살짝 스쳤다. “헬핑후프랑 더 많이 의약품을 교환하고 싶었지만, 레드 아이의 군대가 텐포니 타워를 포위한 상황이라, 그도 치유 붕대 몇 개 정도밖에 내주질 않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은 시간 동안 새 마법을 몇 개 배우는 데 집중했지. 분해 방지 마법이 좋아 보였고.”​제니스가 병을 꺼내 벨벳에게 건넸다. 벨벳은 받은 병을 염동력으로 띄워놓았다. 그녀는 빈 병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안타깝지만 날개를 치료하는 데엔 내 마법과 치료 붕대 몇 개 정도로는 부족해. 네 날개뼈가 붙기 전에 먼저 손상된 부위를 잘라내야 해.” 벨벳 레머디가 한숨을 내쉬면서 칼라미티에게 말했다. “마법으로 발생한 상처야. 손상된 부외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날개가 제대로 낫지 않을 거야. 물론 살점을 잘라내면 피가 많이 나겠지만, 다행히 제니스에게 출혈을 줄일 수 있는 물약이 있었네.”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 건 많이 힘들 거야. 그러니 마취 마법을 써야겠어. 아마 한 시간 동안은 움직일 수 없을 거야.”​핑크색 빔이 마리포니로 향하는 문 위에 맞았다. 콘크리트 벽돌이 빛을 발하며 녹아내렸다.​제니스는 날 보며 말했다. “전에 마차를 띄웠었지. 혹시 우리 모두를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길 수 있겠나?”​난 고개를 저었다.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참이었다. “할 수는 있지만, 내 몸을 띄우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야. 멀리 갈 수는 없을 거야. 갈 수 있더라도 빠르진 않을 거고. 그리고 헬하운드 스나이퍼가 한 번만 잘 맞춰도 마차가 폭발해 버릴 거야.”​“그럼 저 날개 달린 친구에게 의약품을 가져다주기 전까지는 여기에 갇힌 셈이로군.”​“마. 니 우리 이름 아직 안 외웠나? 내 이름은 칼라미디다.”​“사과하지... 칼라미티. 난...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거든.” 노예 출신인 제니스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전에 우리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제니스가 왜 칼라미티의 이름이 재앙을 의미하는 칼라미티인지 알겠다고 했을 때였다. 지금까지 제니스에게 이름으로 불린 존재로는 그녀를 노예로 만든 레드 아이와 스턴, 전설 속의 존재인 둠버니와 나이트메어 문 정도였다.​제니스는 몇 년 동안이나 침묵을 지킨 걸까? 난 알코올 죽독자를 엄마로 둔 민궁뎅이가 우정을 일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필리델피아의 노예 시설에서 지내는 얼룩말에게는 훨씬 더 힘든 일일 터였다. 난 제니스가 자신을 고문하는 포니의 이름을 신경이나 썼을지 궁금해졌다. 제니스는 그런 방식으로 포니들을 구분해 왔던 걸까?​“이 안에 의약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제니스가 마리포니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난 벽에 그려진 지도와 핍벅의 자동 지도 기능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마리포니의 의료 시설은 분화구로 무너진 구역에 있었다. 무너진 구역에 있는 물건은 죄다 부서지거나 오염되었을 것이다. 욕실에 의료용 보관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칼라미티에게 필요한 약품이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았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 안에 도사리고 있을 미지의 공포가, 여신이 행한 일들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여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다면? 난 우리가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여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 병원이 있데이.” 칼라미티가 한 말에 우리 모두 놀랐다. “여 근처에 광부들이 살던 마을이 있읐다. 광산이 폐쇄된 뒤로 마을은 버려졌지마는, 마리포니에서 일하는 포니들과 그 가족들을 수용하려고 몇몇 광산은 다시 열었다 아이가.”​난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칼라미티는 나를 만나기 전에도 수년은 이퀘스트리아 황무지에서 살아갔을 테니, 갖가지 소문과 정보를 아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가 이런 걸 알고 있다는 운이 따른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내가 엄폐하고 있는 벽이 또 에너지 빔에 맞아 빛을 내며 녹았다. 난 드러난 꼬리를 움직여 다시 엄폐했다. 헬하운드 놈들이 무차별 사격을 지속하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내가 회복하는 동안 숨어있을 옥상도 꽤 있을기다. 완벽하지는 않어도... 갈 수만 있으모 헬하운드로부터는 안전한 곳이다.” 칼라미티가 말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헬하운드가 가득하고, 방사능과 테인트로 오염된 땅을 몇 킬로미터는 지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 수 있었다.​“그럼 방향만 가리켜 줘, 칼라미티. 나한테 계획이 있어.” 난 좀 더 자신감 있는 척을 하며 말했다.​“닌 은제나 그렇제. 올드 올네이로 가믄 된다. 그럼 괜찮을 기다.”​*** *** ***​한 시간쯤 지나자 헬하운드들은 흥미를 잃은 듯했다. 놈들이 우리를 공격한 것에 특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그냥 놀이 삼아 공격한 건지 궁금했다.​난 마리포니의 급수탑에 올라 쌍안경을 띄웠다. 저 멀리에 올드 올네이의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을 주변에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고가도로가 있었다. 고가도로는 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에서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은 곳에서 무너져 있었다. 계곡은 도로의 흔적을 지우고, 그 당시 무너진 잔해와 찌그러진 마차들만이 늘어서 있었다.​지평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포니빌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그 너머로 하늘은 에버프리 숲에 일어난 화재의 연기로 뿌옇게 되어있었다. 난 지평선 끝자락을 살펴보다 바늘 모양의 탑 세 채가 흐린 하늘을 뚫고 솟아올라 있는 게 보였다. 저 탑 중에 클라우즈데일 외곽에서 본 것과 같은 탑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전에 다른 탑을 본 적이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한 바퀴 돌아, 나는 다시 올드 올네이를 돌아보고 어떤 길을 따라서 가야 할지 그려보았다. 마리포니에서 올드 올네이까지 뻗은 기차선로를 따라 걷다가, 듬성듬성 자라난 초목의 흔적과 고여서 오염된 물의 흔적이 보이는 암석 지대를 가로지르면 될 것 같았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다리 밑에 자라있는 식물은 지금 내 갈기를 스치는 바람보다 훨씬 더 강한 바람이 부는지 심하게 흔들렸다.​쌍안경의 시야로 알리콘이 날아와 눈 앞을 가렸다. 난 쌍안경을 집어넣고 서둘러 급수탑에서 내려갔다.​더 많은 알리콘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미 여기 있는 알리콘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는지 조용히 돌아갔다. 나는 여신이나 놈의 알리콘 하나가 동행하는 줄 알았는데, 놈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정말 모를 리는 없다.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여신이 우리가 무슨 짓을 할지 가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일전의 전투로 꽤 많은 알리콘을 잃었으니, 잠시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뿐일까?​알리콘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반갑데이!” 칼라미티가 짙은 보라색 알리콘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얼굴 앞에다 발굽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기억나나? 우리가 너흴 위해 뭘 찾아줄라 카는거 알제? 내 날개가 다쳤다 아이가. 느그들이 마차 좀 끌어주모 여서 좀 빨리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칼라미티는 마취 마법의 효과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는지 조금 비틀거리면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쫌 이상하제?”​“여신이 위대하고 강력한 낮잠을 자는 걸지도.” 제니스가 말했다. 칼라미티는 웃음을 터트렸다가 이내 아팠는지 움찔했다.​“그 제니스. 내 이런 말 안 했지마는, 우리 모두 니가 자유의 몸이 되서 기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데이.”​셀레스티아 맙소사. 칼라미티, 좀 많이 어색하지?​제니스는 칼라미티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입을 열어, “고맙다.”라고 답햇다.​칼라미티는 그 말을 곱씹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약물은 니가 만드나? 뭐 갑옷 성능을 올리거나 장비 보수에 좋은 거 있나?”​“아니. 다만 네 총알의 살상력을 높여줄 독약 제조법은 많이 알고 있지.” 제니스는 칼라미티의 의도를 알아챘다는 듯, 정중하게 말했다.​난 칼라미티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우리 일행에 새롭게 들어온 제니스와 친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내 판단을 믿고 제니스를 환영해주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벨벳 레머디처럼 자연스럽게 제니스와 친해지지도 않았고, 스틸후브즈처럼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가지지도 않았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 이상의 관계가 되지 못했고, 지금 칼라미티는 제니스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칼라미티가 알리콘 주위를 노바나나몰 빙 돌며 걸었다. 알리콘은 둔감하게 움직이면서 그저 그를 시야 안에만 두려고 했다. “당장 느그들을 쏴버리고 싶네. 최대한 많이 말이데이.” 벨벳이 그를 노려봤고, 그는 웃으면서 물러났다. “진짜 쏜다는 건 아이다. 기냥 그런 충동이 든다는 기제.”​제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 작은 포니의 계획을 수월하게 시행하려면 지금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난 스카이 밴딧에서 칼라미티의 엔클레이브 갑옷과 스핏파이어 썬더 등 중요한 장비를 빼냈다. 아직 마차 주변에 지뢰가 매설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무너진 벽에다가 장비를 내려놓자 벨벳이 우리를 한곳에 불러 모았다. 파이레라이트는 벨벳의 등에 착지하고는 몸을 부풀려 으스댔다.​벨벳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우리에게 다시 분해 방지 마법을 시전했다. 칼라미티의 머리를 맴돌던 에너지 오브가 터졌을 때 우리 모두에게 걸려있던 마법도 사라졌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벨벳은 마법을 걸면서 설명했다. “마법 자체는 여러 명에게 걸 수 있지만, 한 명만 맞아도 다 풀려버려. 그러니 제발 얌전히 있고 맞지 않도록 해.”​그녀가 말 바라보며 말했다. “특히 너 말야. 이런 말 하긴 싫지만 네가 제일 위험하잖아. 왜 항상 너만 위험을 감수하는 거야, 리틀핍?”​하지만 벨벳도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모두가 콘크리드 조각 위로 올라갔다. 난 동료들과 콘크리트 조각을 염동력으로 감쌌다.​벨벳은 칼라미티가 엔클레이브 갑옷을 입는 걸 도왔다. 특히 다친 날개는 아주 조심해서 입혔다. 벨벳은 가능한 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얼룩말 갑옷을 입었다. “특히 리틀핍 넌 일부러 너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같단 말야.”​난 마리포니의 무너진 벽을 4층 높이까지 띄웠다. 여기서 빠져나갈 때까지 헬하운드들이 쏘아내는 마법 에너지를 이 콘크리트 방패가 막아주길 바랬다.​벨벳 레머디가 걱정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내 염동력은 거대한 벽을 가볍게 띄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하지만 내 몸도 같이 띄워버리면 길을 절반도 가지 않고 탈진해버리고 말게 뻔했다. 난 지하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헬하운드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지뢰를 밟아도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내 무게를 가볍게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벨벳 레머디도 받아들여야만 했다.​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난 마리포니의 폐허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친구들이 있는 콘크리트 벽이 내 머리 위로 높이 떠 있었다.​평소에 말하진 않았지만, 친구들 대신에 내가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 좋았다.​‘타락한 친절’이라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난 최대한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지금은 날 의심할 때가 아니었다.​마리포니의 무너진 끝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난 망설였다. 핍벅이 방사능을 경고하며 딸깍대고 있었다. 하지만 테인트를 감지하는 E.F.S.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고, 소리 없이 고요했다.​갑자기 올드 올네이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 ***​E.F.S. 나침반이 붉은 반점을 띄워 수많은 위험 요소를 나타내었다.​난 제브라 라이플을 띄우고 걸을 때마다 S.A.T.S.를 사용했다. 난 호메이지가 Dj Pon3일을 하고 있어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아트리움에서 한 시간 동안 속독해 읽은 ‘책벌레의 달리기 가이드’를 떠올리며 걸어갔다. 난 족히 몇 킬로미터는 가야 했고,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난 오히려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뾰족한 바늘침이 옆구리에 맞아, 깁옷에 튕겨 나갔다. 조준 마법이 블로트스프라이트 두 마리를 조준했다. 난 두 마리에게 각각 3연발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테인트에 오염된 벌레는 화염에 휩싸인 채로 땅으로 떨어졌다.​난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었고, 블로트스프라이트를 잡느라 낭비한 몇 초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친구들이 타고 있는 콘크리트 벽도 나와 속도를 맞춰 나아갔다. 이제 골짜기에 거의 다 온 것 같았다.​피부가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알레르기 반응인지 몰라 초조했다. 심각한 경우 테인트 오염 증상일지도 모른다.​E.F.S. 나침반이 붉은 점으로 가득 찼다. 작은 불빛이 수십 개는 나타났다. 그리고 좀 더 나타났다. 골짜기엔 적대적인 생물이 가득했다.​난 철로로 걸음을 옮기고 좀 많이 흔들리는 나무다리가 잘 버텨주길 바라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골짜기 끝에서 뭔가 갑자기 솟아올랐다. 난 몸을 떨며, 테인트에 오염된 것 같은 생물을 바라보았다. 식물처럼 생겼는데, 거대한 머리 부분은 가스주머니가 있어 둥둥 떠다녔고, 그 뒤로 줄기가 길게 늘어져 바닥에 끌렸다. 머리 정중앙에 있는 조임근이 조여오더니, 역겨운 점액을 토해냈다. 포자가 섞여 있는 점액이 땅에 튀기면서 숨 막힐 듯한 악취를 풍겼다.​이 빌어먹을 황무지에선 어떻게 매번 새롭게 끔찍한 것들이 튀어나올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점액을 토해내는 식물 생명체 몇 마리가 골짜기에서 올라와 내게 다가왔다.​난 S.A.T.S.를 작동하여 가장 가까운 두 놈을 조준했다. 두 놈에게 각각 세 발의 총알을 먹이자마자 세 번째 놈이 점액을 토해냈다. 갑옷과 털에 오물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닿은 부위가 타는 듯이 아프고 끔찍한 악취 때문에 숨이 막혀 목표 주문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총알에 맞은 두 식물은 놈들을 띄워주던 가스주머니에 불이 폭발하듯이 붙어 타올랐다. 마치 핑키 파이 열기구가 불타오를 때처럼.​식물 세 마리가 더 튀어나왔다. 첫 번째 놈은 불씨에 맞아 덩달아 불이 붙어버렸다. 두 번째 놈은 내게 포자를 뱉어냈고, 셋째 놈은 마치 날 통째로 잡아먹겠다는 듯이 빠르게 다가왔다. 난 옆쪽으로 움직여 토사물을 피하면서 S.A.T.S.를 사용했다. 먼저 나한테 다가오는 놈을 조준했고, 그다음으로 포자를 뱉어낸 놈을 조준했다.​제브라 라이플의 소음기 끝에서 총알이 날아갔다. 두 식물은 이제 불기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식물들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방금 끈 조준 마법을 다시 사용하여 두 놈을 조준했다.​불타오르는 식물 하나가 내게 포자를 뱉었다. 토해낸 포자에도 불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도 불타는 포자는 날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 뒤쪽 선로에 떨어졌다.​맞은 쪽 피부가 몹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난 다시 S.A.T.S.를 해제했다가 묻은 점액을 털어냈다. 그러곤 다시 라이플을 들어 조준 마법을 사용하곤 반쯤 타들어 가는 식물 무리를 향해 다시 총을 쏴댔다.​타오르는 식물 하나가 골짜기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수많은 가스주머니에 불이 붙으면서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연쇄 반응으로 골짜기에 수백 미터에 달하는 불길이 번졌다.​나무다리에도 불길이 뻗치기 시작해 난 미친 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와 숨 막히는 악취가 날 덮쳐 눈이 따끔거렸다. 다리 아래에서 몇몇 식물이 내게 타오르는 포자를 뱉어냈다. 수많은 포자가 다리에 맞아, 아예 불을 제대로 지피기 시작했다. 불타는 포자가 내 왼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뒷다리와 안장 가방에 불이 붙었다!​소리를 질렀다간 헬하운드가 들을 수 있으니 난 이를 앙다물었다. 다리에서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지는데도 난 힘껏 다리를 움직였다. 극심한 고통에 자칫 염동력이 풀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난 콘크리트 벽을 띄우는 데 집중했다. 불이 옆구리로도 번지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도 아팠다.​불길이 발굽도 더듬었다. 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불의 강이 흐르는 골짜기 위의 불타오르는 다리를 거의 다 건너는 순간, 헬하운드가 내 비명을듣고 땅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꽤나 멀리서 튀어나와, 칼리미티가 위에서 놈을 노릴 수 있었다. 네 발의 마법 에너지 탄이 하늘에서 칼날처럼 쏟아져, 헬하운드를 점액으로 만들었다.​연기와 털이 타오르는 냄새에 숨이 막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직감해 난 콘크리트 벽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3미터 거리 정도까지 내려놓았을 즈음 통각이 온몸을 휩싸, 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난 비틀거리는 다리로 끝까지 달리고는 쓰러져, 땅바닥을 구르며 왼쪽에 붙은 불을 끄면서 비명을 질렀다.​*** *** ***​“올드 올네이로 가면 모든 게 다 잘 된다더니.” 제니스가 내 쌍안경으로 마을을 살펴보면서 그 특유의 목소리로 조롱하듯 말했다.​우린 고가도로의 제일 높은 지점에 도달했고 올드 올네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을 주변에 수십 마리의 헬하운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지붕에도 두 마리는 있었다.​“니미럴, 느그들은 와 내 말을 믿었노? 내는 리틀핍이 아이다. 내 계획이 등신 같은 거 다들 알잖나.”​난 엎드려서 염동력으로 쌍안경을 눈에 갖다 대었다. 벨벳 레머디의 마취 주문 덕에 감각이 사라졌지만, 염동력을 쓸 수는 있었다. 오히려 마취 덕에 더 수월했다. 난 염동력으로 파이레라이트가 나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만든 뒤에 모두가 모여 있는 벽 뒤로 데려가게 만들었다.​벨벳은 지체 없이 내 몸에 남은 의료용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러면서 팀을 위해 나 혼자서만 끔찍한 공격을 받아낸 것에 대해 꾸짖었다. 하지만 고통이 사라지고 숨 막히는 매연에서 벗어나자 내가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포자가 묻은 부위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벨벳의 마법에도 가려지지 않는 뭔가가 내 피부 아래를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난 앞다리를 들어 핍벅의 진료 마법을 사용해 몸 상태를 확인했다. 몸 상태가 뭔가 좋지 않다고 나와 있었다. 근데 뭣 때문에 안 좋은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독은 아니었다. 확실히 포자에 독은 없었다. 하지만, 그 포자 점액에는 테인트가 섞여 있었다.​테인트에 노출되지 않고서 이 먼 거리를 지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난 그렇게 운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얼마나 많은 테인트에 노출되는지, 테인트가 얼마나 빨리 몸에 악영향을 미칠지였다. 텐포니 타워의 비밀을 지키는 조직이 테인트를 정화할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테인트가 내 몸에 미친 영향도 되돌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올드 올네이의 폐허에는 상당히 온전한 건물이 여러 채 있었는데, 그 중엔 병원도 있었다. 병원 옥상에는 처음 보는 기이한 기계가 놓여있었다. 마치 분홍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지팡이 사탕처럼 도색된 몸체에, 그 위에는 페리윙클꽃처럼 연한 남색인 프로펠러가 달려있었다.​“저건 뭐야?” 난 기계를 가리키며 노바나나몰 물었다.​“내가 봤을 때는... 어스 포니의 공주 마차 같은디, 어스 포니들이 하늘을 날라꼬 맨든 것 같데이.” 칼라미티가 말했다​그럼 저걸 써먹으면 되는 것이다! 친구들을 안전하게 띄우겠답시고 나 혼자 땅에서 뛰어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잘 움직일 수 있을까?” 난 막연히 기대하며 물었다.​“아니.” 그 말에 어스 포니의 기계에 모두를 태워 안전하게 하늘을 나는 망상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러다 칼라미티가 이어 말했다. “근데 내가 쫌 고치면 날 수 있을 기다.”​희망이 되살아났다. “좋았어! 그게 딱 플랜 B거든.”​난 마을의 다른 곳을 둘러보면서 병원 건너편에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여러 개의 상자와 바리케이드 사이에 기이하게 빛을 내는 안테나 대열과 도로 위에 드문드문 놓여져 있는 오래된 군용 차량에 주목했다. 전복된 마차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금속 상자가 흩어져 있었다. 땅속으로 반쯤 가라앉은 중형 탱크도 있었다. 탱크는 갈색이나 위장색도 아닌, 밝은 다색의 줄무늬로 도색되어 있었다. 페인트칠은 오래되어 빛깔이 바래 있었지만, 마을에 다채로운 색채를 더하고 있었다.​난 웃었다. “저 탱크는 무슨 무지개처럼 보이는데.” 그것 말고는 탱크가 저렇게 도색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정말로? 정말 그렇게 생겼나?” 제니스가 물었다. 나의 의아한 표정에 그녀는 부연 설명을 했다. “무지개를 본 적이 없어서.”​난 처음에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슬펴지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난 하늘을 가린 구름을 올려다봤었다. 여기서도 비는 내렸다. 사실 비가 내리는 건 자주 봤다. 하지만 포스터나 삽화에서 본 것을 제외하면 밖에서 실제 무지개를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진짜로 무지개를 본 것은 스테이블 2의 사과 과수원에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켰을 때였다. 오버메어의 인공적인 햇빛이 안개 사이로 흘러들어 다채로운 색채가 호를 그리며 반짝이는 것이 무지개였다. 내가 많이 어렸을 때 엄마한테 저기서 뛰놀게 해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들어주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이옙. 진짜 무지개를 볼라 카믄 마법이나 햇빛이 필요하제. 이퀘스트리아 황무지에서 제대로 된 무지개가 떴을 리는 읎을기다.” 칼라미티는 내 의문에 답을 해주듯이 말했다.​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에버프리 숲은 다르지도 몰르겄네. 거쪽 구름 장막에는 아마 균열이 있을지도 몰르그든.”​난 벨벳 레머디와 시선을 교환하다가 칼이 가슴에 꽂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지개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무지개가 몹시 그리웠다.​*** *** ***​“내가 다 쏴부릴게.” 칼라미티가 스핏파이어 썬더를 이빨로 집어 들고는 고가도로의 콘크리트 난간 너머, 마을에 있는 헬하운드를 조준했다.​제니스가 스핏파이어 썬더를 발굽으로 밀쳐냈다. “안돼! 쐈다가는 우리의 위치를 드러내는 셈이야.”​“잠깐만.” 벨벳 레머디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칼라미티와 제니스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 둘도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칼라미티는 총을 문 채로 뭐라 말하기 시작했고, 이내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옙. 우리 위치를 알아내기 전에 몇 넘은 더 쏴부릴 수 있을 기다. 글고 건물 안에 있는 넘들이 살펴보라 나왔다가 더 직이삘 수 있을기고. 그리고 우리한테 달려온다 캐도, 거리가 멀어가 오기 전에 다 쏴 죽일 수 있을 기다.”​난 벌써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고 몸을 저격에 최적화된 곳으로 띄우고 있었다.​“리틀핍, 기다려!” 벨벳이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 뒤로 뭐라고 하는지는 제니스의 말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바보도 아니고. 적지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돼. 놈들은 우리보다 많아. 그리고 놈들은 멍청하지 않고 영리하지. 제멋대로 굴지 마.”​칼라미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느는 우리가 어찌했으모 좋겠는데? 숨바꼭질이가?”​제니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철저히 경계하고, 재빨리 움직이며, 바람을 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해. 최대한 적들의 시선에 들어가지 말고, 피할 수 없는 적들만 처리해야 해. 신속하고, 조용하게.”​칼라미티가 날 바라보았다. “내 말은 저 새끼들을 멀리서 최대한 많이 처리하자는 기다. 수를 줄여 놓으모 가까이서 싸울 걱정도 줄지 않긋나.”​제니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나와 칼라미티 사이로 걸어오곤 그를 마주했다. “잘 들어. 난 널 지켜봐 왔다. 넌 사냥꾼이더군. 어떻게 해야 사냥꾼이 되는지는 잘 알아. 하지만 어쩌다가 사냥감이 되는지는 알고 있나?”​칼라미티는 뒤로 물러서면서, 엔클레이브 갑옷의 벌레눈 같은 바이저를 들어 올려 제니스를 직접 바라보았다. “내는 사냥감이 되는 거엔 관심 읎다.”​“난 삶의 대부분을 사냥감으로서 살아왔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추격당할 때 살아남는 법을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잘 새기는 게 좋을 것이다.” 제니스가 칼라미티에게 말했다.​칼라미티는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리틀핍? 느가 정해라.” 제니스도 내 쪽으로 돌아섰다.​난 여러 방법을 따져봤다가, 지금까지 통했던 방법을 선택했다. “칼라미티의 의견에 동의해.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놈들을 최대한 솎아내야 해.”​난 스나이퍼 라이플을 띄워 관통탄을 장전하고 조준했다. 거리가 멀어 조준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코프만으로도 머리를 노리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제니스는 고개를 저으며 콧김을 내뿜었다. 칼라미티는 스핏파이어 썬더를 다시 들어 올리곤 나와 20미터가량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아오 진짜, 멈춰!” 벨벳의 외침이 들렸지만, 난 이미 방아쇠를 당긴 상태였다.​탕!!​탕!!!​올드 올네이를 향해 사격을 실시하자 귀를 찢는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시야의 들어온 헬하운드의 머리가 피비린내를 퍼트리며 터져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다음 목표를 찾아 움직였다. 헬하운드들이 고개를 들고 돌아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표적을 조준해 발사했으나, 놈이 매우 빨리 움직여 맞지 않았다. 난 놈의 앞을 겨냥하여 두 번째 탄환을 날린 다음,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특정 부위를 겨냥한 건 아니라, 그저 최소한 맞기만을 바랬다. 두 번째 탄환은 명중했지만, 놈의 돌진 속도를 느리게 할 뿐이었다. 세 번째 탄환은 완전히 빗나갔다.​난 계속 사격을 가했다.​헬하운드들도 몇 발 응사했다. 마법 에너지 빔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하지만 거리가 먼데다 난간에 엄폐하고 있어서 숙련된 스나이퍼가 아닌 이상 맞을 일은 없었다.​칼라미티에겐 행운이 따랐다. 모든 총알이 명중하여, 놈들을 죽이거나 사지를 잘라냈다. 내가 문밖으로 나오는 헬하운드를 향해 총구를 옮기자 칼라미티는 거리에 있는 놈들을 노렸다.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나도 두 번째, 세 번째 놈을 쓰러뜨렸다.​“에잉 씨벌” 칼라미티가 조준한 헬하운드가 땅을 향해 뛰어들었다. 방아쇠를 당겼지만, 놈의 꼬리만 잘라냈을 뿐이었고, 결국 땅속으로 숨어들었다.​더 이상 문밖으로 나오는 헬하운드는 없었다.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거리에 있는 헬하운드들이 구멍을 파고 사라지는 게 보였다.​우리는 헬하운드를 열 놈 죽였다.​벨벳 레머디는 얼굴을 찡그렸다. “잘했다 잘했어. 이제 쟤네들이 우리가 여기 있고, 먼저 공격했다는 걸 알아버렸네.” 그녀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칼라미티가 다친 날개를 흔들었다. “내 날개는 아니라카는데.” 벨벳 레머디의 귀가 축 처졌다.​제니스가 칼라미티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우리 모두가 사냥감이 되었군.”​*** *** ***​헬하운드 무리가 고가도로로 다가오고 있을 때도 난 마취 주문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놈들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도로를 따라 달려올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놈들은 도로를 떠받치는 기둥을 강력한 발톱을 이용해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헬하운드 한 놈이 난간을 올라 우리를 마주했다. 파이레라이트가 빠르게 대응해 놈의 얼굴에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는 초록색 불꽃을 먹여주었다. 칼라미티도 빠르게 재무장하여, 엔클레이브 갑옷에 있는 노바서지 라이플 두 정을 발사해 발톱을 휘두르는 헬하운드의 몸체를 맞췄다. 그 덕에 파이레라이트는 발톱을 피할 수 있었다. 헬하운드의 몸이 분해되더니, 뒤로 기울었다.​“놈들이 저 밑에서 올라오고 있군.” 제니스는 그렇게 말하곤 가방을 뒤적거렸다.​벨벳 레머디는 파이레라이트에게 말했다. “기둥을 올라오는 애들을 떨어뜨려 줄 수 있겠니?” 파이레라이트는 즐겁게 웃더니 난간 밑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화염의 포효가 들려왔다.​파이레라이트가 두 놈을 더 처리하자, 땅에 있는 헬하운드들은 기둥을 올라오길 그만두고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파이레라이트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고가도로에서 멀어지면서 마법 에너지 빔 사이를 유유히 움직이며 피했다.​제니스는 병을 꺼내 벨벳에게 넘겼다. “장전하기 전에 이 병에다 총알을 담가. 총알로 놈들을 죽일 수 없다면 이 독이 저들을 무력화시킬 테니까.”​벨벳은 컴뱃 샷건을 꺼내고는 제니스의 말대로 탄창을 병에 담갔다. 그녀의 표정은 암울했다.​두 놈이 난간을 기어올랐다. 이번엔 나도 대비가 되어있었다. 난 리틀 매킨토시를 띄우고 S.A.T.S.를 발동해 놈들의 머리를 맞췄다. 뇌의 일부가 관통된 부위를 통해 튀어나왔다.​방금 두 마리를 죽였지만 세 마리가 더 나타났다. 콘크리트 부서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더 많은 적들이 올라오고 있음을 예고했다.​벨벳 레머디은 마취 주문을 헬하운드에게 맞춰 쓰러지게 했다. 그녀는 샷건을 들어 올리고는, 망설였다.​헬하운드가 벨벳에게 달려들었고, 발톱이 그녀의 가슴팍과 목을 가로질러 빨갛게 물들었다. 난 염동력으로 그녀를 뒤로 밀쳤다.​“항복해. 네게 해를 가하기 전에.” 벨벳이 말했다.​“니미럴!” 칼라미티는 헬하운드를 향해 마법 에너지 탄을 쏘아내며 외쳤다. 놈은 쓰러져, 증기가 올라오는 점액이 되어갔다. 칼라미티와 벨벳은 피어오르는 증기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런 거 신경 쓰지 마라! 관심이나 있겄나!”​“저들도 생물이야! 살 권리가 있다고.”​“느 제니스 말 못 들었나! 놈들은 우리를 사냥할라 칸다고!” 칼라미티가 아스팔트를 파헤쳐나온 헬하운드에게 총을 쏘며 말했다.​“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벨벳은 제니스 주위에 보호막을 치며 큰 소리로 되받아쳤다. 헬하운드의 발톱은 벨벳의 보호막을 허공을 휘젖기라도 하는 것처럼 쉽게 찢어버렸다. 제니스는 안쪽으로 파고들더니, 뒷다리를 휘둘러 한쪽 발굽으로는 헬하운드가 내지르는 팔을 막고, 다른 한쪽 발굽으로는 헬하운드의 목을 가격했다. 헬하운드는 숨 막혀 하면서 쓰러졌다.​“애초에 누가 대화를 해볼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해?” 벨벳은 화가 나 소리쳤다.​난 최대한 빨리 리틀 매킨토시를 장전했다. 놈들은 더 맹렬하게 공격해오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쓰러뜨리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한 놈이 발톱을 제대로 휘두르기만 해도 우린 죽을 터였다.​주변에는 피투성이의 헬하운드 시체와 콘크리트 조각이 널려 있었다. 기적적이게도, 우린 죽거나 다치지 않고 열 마리를 더 처리할 수 있었다. 벨벳 레머디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는 해도 노바나나몰 지금 그러긴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나는 벨벳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한 헬하운드에게 총알을 갈겼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총알은 빗나갔고, 놈은 날 발톱으로 도려내려 했다.​벨벳 레머디가 목으로, 고음의 소리를 발성했다. 그러자 헬하운드들이 발톱으로 귀를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놈들은 재빠르게 뚫고 나온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 버려서, 조준 마법을 사용하여 총을 쏠 새조차 없었다.​벨벳은 계속해서 청아하고 강렬한 고음을 발성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헬하운드들이 고가도로를 피해,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놈들이 전부 가버리자, 벨벳은 그제서야 발성을 멈췄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면서 우리를 노려보았다. “괴물이나 위험한 동물은 그렇다 쳐. 그렇지만 지능이 있는 동물이랑은 서로 죽이지 않고서도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 아냐!”​*** *** ***​우리는 조심스럽에 올드 올네이로 들어섰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어둠이 내려와 더 위험해지기 전에 난 병원에만 들렀다가 빨리 나오고 싶었다.​우리는 지금 제니스의 충고를 새기고 있었다. 눈에 띄지 말고,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우리 중엔 벨벳 레머디만 잠입에 능하지 않아, 내가 그녀를 띄우고 다녀야 했다. 내 뿔과 그녀를 감싼 염동력에서 희미하게 빛이나 걱정이 되었다. 마치 그녀를 대놓고 쏴달라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헬하운드들은 시각보다는 청각, 그리고 아마 후각에 의존하여 적을 찾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발굽을 땅에 닿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우리가 건물의 잔해를 밀치고 지나갈 때, 난 무너진 천장을 통해 포니 모양의 형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난 친구들에게 발굽을 흔들었다. “잠깐만. 저기 좀 확인해보고 싶어.”​난 몸을 띄웠다. 뿔을 더 밝게 빛내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E.F.S. 나침반에는 빨간 점이 나타나지 않았고, 생명체의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위험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뚫린 천장으로 몸을 띄우자, 포니 모양의 형체가 스틸 레인저들의 시체임을 알 수 있었다. 세 명은 강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 포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 포니는 노란색 유니콘 암말이었는데, 스틸 레인저의 상징인 톱니바퀴와 스파크가 수놓아진 붉은 색 로브로 무장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엘더 블루베리 세이버를 빼면 갑옷을 입지 않은 스틸 레인저는 본 적이 없었다. 네 명 모두 헬하운드의 발톱에 할퀴어져 생긴 끔찍한 상처로 인해 죽었다. 시체는 메말라, 죽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시체 주위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헬하운드들이 한 것 같았다. 난 지뢰를 하나하나 해체했다.​난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올드 올네이로 온 이유를 알려줄 만한 것과 우리에게 이득이 될 만한 물품이나 탄약을 찾았다. 운이 좋았다. 로브를 입은 포니는 스텔스벅 두 개와 메모리 오브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레인저들 중에 한 명은 마법탄을 가지고 있었는데, 칼라미티의 전투 안장에 부착된 총과 구경이 같았다.​난 가져온 물건을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니 올드 올네이에 있는 동안, 그 들여다볼 거 아이제? 우리 얘기한 거 잊지 않았제?” 칼라미티가 가볍게 경고했다.​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핑키 파이 맹세할게.”​“고건 또 뭔데?”​“별거 아냐. 나중에 얘기해줄게. 정말로.”​우리가 길 끝에 다다랐을 때, E.F.S.가 모퉁이를 돌면 헬하운드가 적어도 네 마리는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우린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습하면 되니까. 하지만 한 헬하운드가 발톱을 제대로 휘두르기만 해도 우리 중 누군가가 죽을지 모른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다간 다른 헬하운드를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우린 제니스의 충고를 따를 것이다. 난 모두에게 다른 길을 찾자고 신호를 보냈다.​칼라미티는 작게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드네, 내는 살금살금 게임이 아니라 사냥꾼을 사냥하고 싶은데. 내가 뭔 토끼가.”​제니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가 힘들진 않았나?”​칼라미티는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느 그거 무신 뜻이고? 내가 자랑질에 환장한 걸로 보이나?”​“아주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벨벳은 칼라미티를 달래면서도 당황할 만한 말투로 말했다.​*** *** ***​반쯤 무너진 소방서가 기괴하게 기울어 있어, 그 주변이 기이하고 비틀린 곳처럼 보였다. 칼라미티와 벨벳, 나는 무너진 바닥과 기울어진 기둥으로 이루어진 미로를 나아가고 있었고, 파이레라이트는 층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이따금 무너진 바닥에 반쯤 파묻히고 부서져 있는 붉은색 소방차를 향해 뛰어들곤 했다.​헬하운드 한 마리가 우리 뒤에 있는 문으로 들어섰지만... 제니스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제니스가 갈비뼈 아래를 빠르게 강타해, 놈은 그대로 쓰러졌다. 놈이 쓰러지면서 문틈으로 날아온 마법 에너지 탄환이 제니스의 목에 맞았다. 제니스의 몸이 밝게 빛났고, 머리 위를 맴도는 에너지 구체가 터졌다. 제니스는 목에 난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벨벳 레머디는 헬하운드에게 마취 주문을 사용하고는 제니스에게 달려가, 자신의 드레스를 가지고 상처를 압박했다. 드레스가 피로 흠뻑 젖었다.​“인제 죽여도 되제?” 칼라미티가 말했다. 벨벳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제니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조용히... 그리고 칼로 째서... 피... 냄새를...”​두 헬하운드가 우릴 쫓고 있었다. 우리 냄새를 쫒아온 것이 분명했다. 난 제니스의 뜻을 이해했고, 칼라미티 역시 이해했다. 벨벳 레머디는 고개를 돌고 있는 상태라, 우리가 헬하운드 둘을 죽여버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바라보지 않으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빠르고, 자비롭게 놈들을 죽였다. 이들의 시체를 욕보일 것을 생각하면,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였다.​“이러면 더 이상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거야.” 벨벳은 감정이 격양된 채로 말했다.​난 폐허에서 삐죽삐죽한 금속 조각을 띄워 헬하운드의 몸 위에 놓으며 잠시 망설였다. 난 놈의 내장을 꺼내고, 피 냄새를 퍼트려야 했다. 죽은 자의 냄새로 우리의 자취를 감추자니, 비열하게 느껴졌다.​천천히, 난 금속 조각을 눌러, 헬하운드의 단단한 가죽을 잘라냈다. 톱질하듯 금속 조각을 움직였다.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고, 악취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헬하운드가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난 애써 자위했다.​‘타락한 친절이로군.’ 머릿속의 작은 포니가 여신의 목소리로 속삭였다.​제발 그만.​일을 마치고 나자, 속이 메스꺼웠다. 난 이미 수많은 목숨을 취했지만, 이번엔 레이더가 된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피를 흘리며, 레이더 갑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 마법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 ***​위층엔 욕실이 있었고, 욕실에는 의약품 보관함이 있었다. 깨진 거울과 작살난 변기가 기괴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건물이 완전히 기울어져 있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방금 전에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보다 더 메스꺼웠다.​세면대에 가까이 다가가자, 핍벅이 수도 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을 감지하곤 딸각댔다. 이곳의 물에선 필리델이아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난 주저앉고는 벽에 기대어 여자아이의 방에 있는 구급상자의 자물쇠를 가볍게 땄다. 난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비우고는 남자아이의 방에서 가져온 보관함에다 넣었다. 칼라미티의 날개를 낫게 할 만한 물건은 없었지만, 작은 치료용 습포제로는 제니스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황무지도 가끔은 작은 은혜를 베풀었다.​기울어진 바닥에서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서둘러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다들 소방서의 주방이었던 곳에 모여 있었다.​벨벳 레머디는 습포제를 가져다가 상처 부위에 붙이고는, 칼라미티의 수선 키트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난 두 건물 전의 캐비닛에서 찾은, 반쯤 빈 사과 위스키를 꺼냈다. 위스키는 바늘을 소독하는 데 쓰였다. 난 한 모금 마시고 싶어 입맛을 다셨지만, 마지막 남은 물통에 든 것을 한 모금 마신 것으로 만족했다. 이 물통도 거의 다 비어 있었다.​가려워선 안 될 곳이 가려웠다.​습포제가 제니스의 목에 난 상처를 벌어지지 않게 하면서 출혈을 막았다. 벨벳은 상처 부위를 꿰매는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벨벳이 숙련된 의사라 할지라도, 제니스는 평생 끔찍한 흉터를 가진 채로 살아가야 할 것은 분명했다. 에너지 탄환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맞았다면, 분명 그녀는 죽었을 테니 그나마 나았다.​“이제 여기서 가만히 쉬어.” 벨벳이 제니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리틀핍, 넌 제니스 좀 지켜봐 줘. 나랑 칼라미티는 사체 흔적을 지울 만한 헝겊 같은 거라도 찾아볼 거니까.” 벨벳은 날 끌어들이더니 걸어 나갔다.​칼라미티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는 내 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 “오브 보지 말고.”​난 벨벳을 따라가는 칼라미티를 바라보았다. 헝겊이라니? 그냥 칼라미티랑 단둘이서 얘기할만한 핑계를 대는 거로 보이는데.​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하루다.” 엄밀히 말하면 아니었다. 하지만 스플랜디드 밸리에 발굽을 들인 이후로는 정말이지 힘든 하루였다. 나쁜 정도로 따지면 루나 급이랄까.​제니스는 약 1분 동안 가만히 누워 있다가 일어나선 주방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기울어진 탁상에 몸을 기댄 채로 선반을 뒤졌다.​“너도 우리만큼이나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구나.” 제니스가 냄비를 여러 개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나는 낄낄대며 웃었다. 냄비 하나가 기울어진 탁상을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떨어졌다. 난 냄비가 바닥에 닿기 전에 염동력으로 잡아챘다.​난 지난 며칠 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질문을 던졌다. “제니스, 넌 날 믿어?”​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무엇을 말이지?”​내 질문을 회피하는 말이었지만, 좋은 질문이기도 했다. “날... 하나의 인격체로서 믿어?”​“아니. 그래야 하나?” 제니스는 간단히 답했다.​난 그녀의 무심한 듯 솔직한 대답에 당황했다. “왜지?”​“넌 충동적이고 욕구를 조절하는 데 능숙하지 않아.” 제니스는 냉장고 문을 열고 괴상하게 변형된 곰팡이로 덮인 뭔가를 한 움큼 꺼내며 말했다. 그녀는 그걸 탁자 위에다 놓았고, 난 그걸 보고 흠칫 놀라면서도 떨어지지 않게 염동력으로 붙잡았다.​“넌 두뇌 회전이 빠르고 행동력도 똑같이 빠르지.” 제니스는 낮은 서랍을 확인하려고 몸을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 덕에 너는 내가 아는 그 어느 포니보다, 나아가 얼룩말보다 적응력이 좋더군. 다른 이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할 상황에서도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지. 하지만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 경솔한 행동을 해버릴 때도 있어. 자주 위험에서 벗어나는 한편, 그만큼 곤경에 빠지지.”​제니스는 서랍에서 그토록 찾던 노바나나몰 칼을 꺼냈다. 그 칼도 탁상 위에다 놓았고, 그녀가 내게 고개를 돌리는 동안 난 염동력으로 칼을 잡았다. “내가 본 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너를 그렇게 오래 봐 온 것도 아니지. 왜 묻는 거지?”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그저 뛰어난 관찰력을 원망할 뿐이었다. “넌 내가 사악한 포니라고 생각해?”​제니스는 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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